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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0 19:12

 영화를 보고 난 뒤, 나에게 있어서 월 남전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려고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내가 배웠던 중학교 고등학교 역사책에서의 월남전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을뿐더러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아주 짧막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니 나 역시도 정지영 감독님의 말씀처럼 월남전의 한국군 파병을 월남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서 ‘불편함’이란 월남전을 단순히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월남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단순히 미국과 베트남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베트남으로 파병된 우리나라의 군인들은, 어쩌면 징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극한의 고통과 공포 속에서 죽어간 군인들 반대로 그 고통과 공포 속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 모두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짐을 짊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하얀 전쟁>에서 이경영이 맡은 변진수라는 인물은 월남전에서 겪은 충격, 트라우마 때문에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진수는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에서는 아군이고 적군이고 일단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은 누구나 없애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변진수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는 끝없이 이상 행동을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변진수가 헬기 소리와 천둥 번개 소리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감독님께서는 실제로 전쟁 후유증으로 많이 있는 일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가장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민주화 투쟁 현장을 보면서 베트콩이 왔다는 변진수를 간신히 데리고 도망 나온 한기주와 변진수가 잠시 숨을 돌리는 장소. 그 장소는 다름 아닌 아름다운 성당 앞이다. 성당에서는 종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고, 카메라의 포커스는 성당 맞은편에 자리 잡은 무덤으로 옮겨진다. 성당 앞에는 결혼식이 한창이다. 감독님께서는 이곳이 마포 어느 곳에 위치한 한 성당이라고 말씀하셨고, 이 장면을 통해서 철학적인 미장센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하셨다. 나 역시도 감독님의 의도처럼 이 장면을 가장 철학적이고 인간의 실존 문제를 적절하게 조합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죄를 사하여 줄 것만 같은 성당과 그 맞은편에 자리 잡은 죽음의 공간인 무덤. 그리고 행복의 시작을 나타내는 결혼식. 그 곳에서 한기주는 고통에 휩싸여 있는 변진수를 총으로 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한기주는 변진수를 완벽하게 해방시켜 준 것이다. 더불어 한기주 자신도 해방되었다. 이는, 한기주가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지 못했던 원인 까지도 완벽하게 찾아내 해방시켜준 것이다. 한기주 속에 있는 변진수는, 그가 변진수를 총으로 쏜 순간 완전 히 사라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 면에서 눈물이 난 이유는, 단지 베트 남전에 참여했던 이들에 대한 연민 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영 화를 보는 내내 가슴에 묵직한 것이 얹혀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나 전쟁영화를 다른 영화 장르 에 비해서 좋아하는 나였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전쟁은 나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역시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긴박감 넘치고 때로는 잔혹한 전쟁 영화가 무언가 깨달음을 주기 보다는, 단순히 나의 흥밋거리와 아드레날린 분비를 도와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얀 전쟁>을 본 이후에 얼마나 내 자신이 어리석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쟁은 나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숨 쉬고 과제를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참한 생명이 잔혹하게 죽어가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누군가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어서 전쟁고아가 되고, 누군가는 전쟁으로 자식을 잃어서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고서 살아간다.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당장 우리의 조상들부터 전쟁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살아갔다. 어쩌면 지금도.

 수요일 늦은 저녁. 낡은 헐리우드 극장에서 본 1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영화에서 나는 전쟁을 보았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들을 보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극한의 공포에 휩싸인 누군가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빠져 나오며, 많은 관람객의 눈에서 “전쟁”에 대한 비참함을 읽을 수 있었다. 최초로 베트남 현지에 들어가 월남전을 다룬 영화를 촬영하신, 훌륭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한 정지영 감독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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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구별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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